[먼저보기]대학생 외주 입문서

[먼저보기][대학생외주입문] 나는 돈이 싫었다

gaonhae 2022. 8. 22. 07:25

 

나는 평범하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돈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큰 어려움 없이 가질 수 있었고, 부족함을 느껴보지도 못했다. 부모님께서 돈 때문에 한탄을 하는 것은 내 기억에 없었다. 나는 우리 집이 상위권은 거뜬히 되는 줄로 알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은 공부에만 집중하기에도 벅찬 고3 시절이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기숙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꼴로만 본가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 달에 3일 남짓한 그 순간이 가족들의 일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집보다 기숙사가 더 익숙해질 무렵, 어느 날부터 평소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내 귀를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입에서 오가는 돈 이야기, 바로 이것이었다. 복권에 당첨됐

다거나, 매입한 아파트의 가격이 올랐다는 이야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미 예상했겠지만 그런 것들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였다. 이런, 공부 말고도 신경써야 할 것이 늘어버렸다.

돈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내 뇌리에 박힌 건 그로부터 조금 지난 뒤였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었지만, 수능이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외할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 죽음의 고비를 힘겹게 넘기시고 겨우 의식을 차리신 날, 그 날이 바로 내 수능 날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기대했던 성적에 미치지 못해 절망하던 나는 뒤늦게 엄마에게 그 소식을 전해듣고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내 수능 점수도, 해방감도, 절망감도 한 순간에 내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렸다. 난 그 순간 그저 우리 가족이 다시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내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을 테스트해보려는 하늘의 뜻이었는지, 양가 조부모님들께서 모두 건강 상의 문제를 앓기 시작하셨다. 막대한 병원비와 가족의 고통으로 인한 스트레스, 많은 의사결정의 상황에서 오는 갈등.... 많은 것들이 우리 가족을 괴롭혔고, 그 깊이는 내가 지금 이 순간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순간 내가 가장 증오했던 건 무엇이었겠는가? 이었다. 어린 마음에서였는지, 돈만 있으면 다 잘 풀릴 것만 같았다. 

난 수능이 끝나고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권투도 배우고 싶었고, 수 년 전부터의 컴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해 작은 수술도 받고 싶었고,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의 여행, 주식투자 연습, 좋은 핸드폰 마련하기 등... 그 때의 나는 19살이었지만 꿈이 많은 어린애였다. 그 꿈들이 하나 같이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 큰 문제였지만 말이다. 당연히 모든 꿈을 난 접었다. 용돈을 달라는 말도 쉽사리 꺼내지 못했고, 친구들이 인스타에서 자랑하기 바빴던 수능 선물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가정 경제에 눈을 떴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아끼고 조금만 덜 써서 모아둔 돈으로 이럴 때 거들 수 있었더라면..... 의미없는 후회였다. 내 수중에 있는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부모님들의 갈등을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