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 4

이타성 == 이기성

(제목에서 왜 등호가 두 개인지 이해했다면 당신은......) 대학생 신분인 나는 할 게 아주아주아주아주 없을 때 간혹 에브리타임에 들어가보곤 한다. 웬만한 글들은 읽기만 하고 넘기지만 코딩 질문을 하는 글들은 항상 참지 못한다. 이렇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는 정말이지 기분이 째진다. 인정받는 느낌, 존중받는 느낌, 성취했다는 느낌까지... 온갖 좋은 감정들이 몰려와 내게 다시금 힘을 불어넣어준다. 언젠가 내가 읽던 책에서 나왔던 말이 순간 떠올랐다. 이타적인 목표가 역설적이게도 가장 이기적인 목표이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대학교에서 시험을 대비하며 친구들에게 공유하기 위한 자료를 만들곤 했다. 총정리, 취약 개념 정리, 모의고사 등등 다양하게 만들어왔다. 나만 볼 것이 아닌 다른 친구들도 본다고 하니..

사소함의 가치

어제 나는 내게 너무나도 소중한 이와 시간을 함께했다. 오랜 시간 함께했기에 과할 만큼 차림새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내 구겨진 크림진은 그 사람의 소중함을 맞이하기엔 너무나 초라하다 느꼈다. 그래서 시간이 촉박하였음에도 휘파람을 불며 정성껏 다림질했다. 행동은 급했지만 마음엔 여유를 가지려 했고, 다림질을 마친 바지를 입고 나니 내가 입은 것이 바지가 아닌 행복인 냥 기분이 좋아졌다. 서둘러 달려가 그 사람에게 내 바지를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은 엄청난 돈도, 엄청난 유흥도, 엄청난 쾌감도 아니었다. 그저 쫙 펴진 바지와 그로부터 오는 만족감이 전부였다. 정말이지 사소했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라는 말, 우리는 어릴적부터 참 많이 듣고 자란다.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

갑자기 아파오길래

누군가 내 어릴 적 어느 날을 회상해보라 한다면 열 중 여덟은 짜증으로 가득찬 모습일 것이다. 지금과는 달리 과거의 나는 정말이지 짜증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자주 힘들었다. 그런데 그 때의 내가 몰랐던 게 있었다. 내 짜증으로 인해 진정으로 힘들어지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내 주변 사람들이야말로 내 짜증에 찔리고 아파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는 짜증을 줄이려 노력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중2병이 가득했던 시절에는 "내가 짜증나는데 남들 기분 알게 뭐야?"와 같은 유치한 생각을 하곤 했다. 물살에 흙더미가 쓸려오듯, 시간이 흐르며 내 경험도 쌓여갔고 이런 사고 방식은 쓸려내려갔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도 "내가 괴로우면 남들도 괴로워야지"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하곤 하는 사람이 많다. ..

개발자이기 이전에,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나는 생각이 참 많다. 그래서 좋다. 개발을 하고 있을 때는 코딩으로, 그렇지 않을 때는 각종 생각들로 인해 내 머리는 쉴 새가 없다.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좋았고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과 많은 어른들보다도 성숙한 내가 좋았다. 나는 외부의 스트레스에도 굳건했으며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나무와 숲을 모두 볼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먼저 마음을 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성장하는 것을 사랑했으며 성취감에 취하곤 했다. 매일 내 삶은 나아진다 느꼈고, 거의 그러했다. 이 모든 것이 많은 생각의 산물이라고 믿었다. 내 자존감의 근원은 성숙한 정신이었다. 내게 개발자라는 페르소나가 있듯, 사유하는 인간으로서의 페르소나도 필요하다 느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는 게 사유와 정신이니 어쩌면 순서가 바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