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인간으로서 7

내 행복을 위한 네 행복

우리 자신에게 행복을 선물하기란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욕망에 따라 끊임없이 더 좋은 것을 추구하게 되고, 어떤 하나에 만족을 하더라도 다른 하나에 눈길이 가게 되는 것이 인간 존재이다. 나 역시 만족을 정말 못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자아를 드러내기 위한 욕구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는 많은 돈과 좋은 사람들, 행복한 경험들을 원하며, 만족도 오래가지 못한다. 이런 나이기에 나를 만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무수한 행복들이 있지만 지금은 논외로 하자)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내 주변에는 내가 행복을 선물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면, 따듯한 말 한 마디..

성공의 ㅅ자를 그리는 방법

나는 성공하는 방법을 모른다. 성공을 경험해보지도 못했고, 주변에 성공했다고 할만 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남들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성공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성공의 ㅅ자 정도는 논할 수 있을 것 같다. 성공을 위한 준비를 위한 준비를 위한 준비랄까? 사실 별로 거창하지도 않다. 성공의 ㅅ자를 그리는 방법은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런 소리를 또 들은 것을 축하한다. 이번이 당신의 삶에서 아마 812092번째쯤 될 것이다. 너무 지겹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 화는 가라앉혀라. 그런데 이런 소리를 왜 당신이 수도 없이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곱씹어볼만 하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는 것은 그 뜻이 진리에 가까울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이니까. 인생은..

소중한 이

모든 사람은 살아가면서 적어도 몇 명의 소중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내게도 물론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 있다. 정말이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나를 위해주며 나를 아껴주는 사람 말이다. 그 사람이 나를 아껴주는 만큼 나도 그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정말 여러가지 노력을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고, 그 중 하나는 그 사람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다보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 중에는 스쳐지나가는 말도, 한참을 머무르는 말도 있다. 내가 코딩을 좋아하는 만큼, 그 사람과 함께 하면서 코딩에 대한 이야기를 간혹 하고는 한다. 대체로는 스쳐지나가는 말들이다. 요즘 네트워크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저 책을 읽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정말 가볍게, 스..

이타성 == 이기성

(제목에서 왜 등호가 두 개인지 이해했다면 당신은......) 대학생 신분인 나는 할 게 아주아주아주아주 없을 때 간혹 에브리타임에 들어가보곤 한다. 웬만한 글들은 읽기만 하고 넘기지만 코딩 질문을 하는 글들은 항상 참지 못한다. 이렇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는 정말이지 기분이 째진다. 인정받는 느낌, 존중받는 느낌, 성취했다는 느낌까지... 온갖 좋은 감정들이 몰려와 내게 다시금 힘을 불어넣어준다. 언젠가 내가 읽던 책에서 나왔던 말이 순간 떠올랐다. 이타적인 목표가 역설적이게도 가장 이기적인 목표이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대학교에서 시험을 대비하며 친구들에게 공유하기 위한 자료를 만들곤 했다. 총정리, 취약 개념 정리, 모의고사 등등 다양하게 만들어왔다. 나만 볼 것이 아닌 다른 친구들도 본다고 하니..

사소함의 가치

어제 나는 내게 너무나도 소중한 이와 시간을 함께했다. 오랜 시간 함께했기에 과할 만큼 차림새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내 구겨진 크림진은 그 사람의 소중함을 맞이하기엔 너무나 초라하다 느꼈다. 그래서 시간이 촉박하였음에도 휘파람을 불며 정성껏 다림질했다. 행동은 급했지만 마음엔 여유를 가지려 했고, 다림질을 마친 바지를 입고 나니 내가 입은 것이 바지가 아닌 행복인 냥 기분이 좋아졌다. 서둘러 달려가 그 사람에게 내 바지를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은 엄청난 돈도, 엄청난 유흥도, 엄청난 쾌감도 아니었다. 그저 쫙 펴진 바지와 그로부터 오는 만족감이 전부였다. 정말이지 사소했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라는 말, 우리는 어릴적부터 참 많이 듣고 자란다.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

갑자기 아파오길래

누군가 내 어릴 적 어느 날을 회상해보라 한다면 열 중 여덟은 짜증으로 가득찬 모습일 것이다. 지금과는 달리 과거의 나는 정말이지 짜증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자주 힘들었다. 그런데 그 때의 내가 몰랐던 게 있었다. 내 짜증으로 인해 진정으로 힘들어지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내 주변 사람들이야말로 내 짜증에 찔리고 아파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는 짜증을 줄이려 노력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중2병이 가득했던 시절에는 "내가 짜증나는데 남들 기분 알게 뭐야?"와 같은 유치한 생각을 하곤 했다. 물살에 흙더미가 쓸려오듯, 시간이 흐르며 내 경험도 쌓여갔고 이런 사고 방식은 쓸려내려갔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도 "내가 괴로우면 남들도 괴로워야지"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하곤 하는 사람이 많다. ..

개발자이기 이전에,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나는 생각이 참 많다. 그래서 좋다. 개발을 하고 있을 때는 코딩으로, 그렇지 않을 때는 각종 생각들로 인해 내 머리는 쉴 새가 없다.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좋았고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과 많은 어른들보다도 성숙한 내가 좋았다. 나는 외부의 스트레스에도 굳건했으며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나무와 숲을 모두 볼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먼저 마음을 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성장하는 것을 사랑했으며 성취감에 취하곤 했다. 매일 내 삶은 나아진다 느꼈고, 거의 그러했다. 이 모든 것이 많은 생각의 산물이라고 믿었다. 내 자존감의 근원은 성숙한 정신이었다. 내게 개발자라는 페르소나가 있듯, 사유하는 인간으로서의 페르소나도 필요하다 느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는 게 사유와 정신이니 어쩌면 순서가 바뀐지..